SPACEÜBERMENSCH
Hyun-sung Park
2024. 8. 31_15:00
개인전 《나는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모른다》 전시 전경
https://www.over-man.com/exhibition/2024.8.24---9.6
오윤영)
더운 날에도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스페이스 위버멘쉬 기획자 오윤영입니다. 이번 전시를 진행하신 박현성 작가님입니다. 진행은 먼저 저의 질문과 작가님의 답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후 와주신 분들의 질문을 받고자 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약 10년 정도 독일에 계셨는데 저에게 있어서는 꽤 긴 시간으로 느껴지거든요. 다시 돌아온 한국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박현성)
사실은 계속 도망 다니는 것 같아요. 장소의 이동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계속 나한테 맞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건데, 어쨌든 나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서 간다는 게 있던 곳에서 내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거잖아요.
내가 도망갔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어요. 여기서 다시 정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믿음도 사실 없었고.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속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저도 변화했더라고요.
성장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 쌓인 레이어들이 있어서 돌아왔을 때는 제가 도망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고, 오히려 여기를 좀 더 긍정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서 다시 내 시간을 쌓아나가는 새로운 시작인 것 같아서 동시에 설레기도 했어요.
오윤영)
작가님의 예전 작업들을 봤을 때 <의존도 측정하기(2014)>와 같은 초기 작업에서는 중력을 통해서 의존도를 측정하거나 보여주는 그런 방식이었어요. 코로나 때 제작한 <스트라이크(2021)>에서는 낯선 상황 속에서의 연결을 다뤘고요. 작업들을 보면서 관계에서 오는 내밀한 감정들을 포착하고 드러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계와 환경 변화 속 개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듯했어요. 작가님은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박현성)
상황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예전 작업에서는 그 시기에 내가 놓여 있던 관계성을 다루었고요. 그때는 의존하는 것에 있어서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했었는데, 지금은 좀 더 나를 들여다보면서 나에게서 시작되어 퍼져나가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관계라는 게 정확히 뭐냐고 하면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변하고 계속 움직이고 그 모습을 그냥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내 몸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낸다거나, 낯선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내 몸이 시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꿈틀대고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고 느꼈고 그런 것에 대해서 작업하게 됐어요.
돌아오니 제가 새롭게 대면해야 하는 것이 많았어요. 약 11년 정도의 긴 공백 동안 여기 두고 갔었던, 제가 잊고 싶었거나 피하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 것들에서 제가 예전처럼 그냥 피할 수만은 없고, 제가 제 모습을 변화시켜야 되는 단계가 왔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꾸역꾸역 삼키면서 해소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게 작업에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오윤영)
초기 작업들은 의자처럼 견고한 물질이거나, 적은 수의 개체끼리 팽팽하게 힘과 중력을 받는 모습이었어요. <불균형한 의존(2015)>, <우연의 무게(2020)>처럼요. 점차 가벼워지고 느슨해지지만, 더 많은 것들이 연결되는 모습이 보였어요. 이번 작업 <Breathing bones(2024)>는 더 가볍고 둥둥 떠 있는 듯해요. 더 개인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작가님에게 ‘숨을 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현성)
숨을 쉰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것인데, 저에게는 가벼워지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투명하고 공기가 통하거나 하는 가벼운 재료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불균형한 의존>처럼 의자가 기대어져 있거나 한 예전 작업은 스스로도 유연하지 못했던 과거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무나 금속처럼 견고한 물성을 가진 재료로 작업을 했었고, 그러다가 좀 더 유연한 천이라는 재료가 들어왔어요. 천은 견고한 물성을 가진 나무나 금속 같은 재료를 중화시켜 주고, 서로 절대 묶일 수 없는 성질을 가진 재료를 유연한 천으로 묶으면서 연결을 하기 시작했어요. 단단했던 물질에 유연한 것을 가져오면서 그것들을 연결하거나 하나로 합치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작업이라는 게 작가의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인데, 현재는 가볍고 투명성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내가 좀 더 가벼워지고 싶고, 안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해요.
오윤영)
설치 작업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작품들도 처음 계획에서 바뀌었기도 하고요. 작업을 하며 계속 덧붙여 나가신다고 하기도 했고요. 작품을 제작하거나 전시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이나 상황이 있었나요?
박현성)
<어딘가엔 적당한 이유가 있다(2019)>가 제 졸업 작품인데요. 이 작업은 애초에 이렇게 계획된 작업이 아니었어요. 염색으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커다란 천을 염색하니 큰 건조대가 필요해졌어요. 이걸 말리려고 나무로 건조대를 만들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필요에 의해서 건조대가 점점 커지는 거예요.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 자체를 작업으로 볼 생각을 못 했는데 교수님께서 이걸 그냥 통째로 뜯어서 가져다 놔라, 이게 그냥 너의 모습이다. 라고 하셔서 작업 과정과 작업 성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졸업 작업을 할 때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작업을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어요. 처음에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고 하나를 세워놓고 그걸 계속 보다가 하나를 더 덧대고, 내가 이렇게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구나, 하고 졸업하면서 스스로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전시되고 있는 작업을 만들 때도 그냥 우선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나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계속 그냥 뭔가를 빼거나 덧붙이면서 어디까지 퍼져나가고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이런 것을 작업과 소통하면서 진행하는 편이에요. 저는 작업을 할 때 스스로의 허용치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작업도 안에 있는 철물 구조물들은 거의 다 마지막에 하나씩 덧대어진 거고, 스스로 어디까지 즉흥성을 허용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오윤영)
작품을 구상하면서 문학적 작품 혹은 음악이나 어떤 감정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있을까요?
박현성)
제가 문학적인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작업으로는 <Swinging (2018)> 이라는 그네 타는 퍼포먼스 작업이 있어요. 롤랑 바르트라는 작가의 책에 나와 타자에 대한 한계를 설명한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이 작업을 했어요. 영상을 짧게 볼게요.
이 작업은 그냥 내가 누군가와,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저는 내 피부라는 곳 안에 갇혀 있는 하나의 개체이고, 절대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하는 공간 안에는 저만 존재하고 다른 분들은 모두 쇼윈도우를 통해 공간 밖에서만 저를 볼 수 있었어요. 어떤 한계에 대한 작업이었는데, 그건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의 한계이기도 하고, 언어적인 한계이기도 하고요. 당시 느꼈던 다양한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 작업이에요.
그밖에는 평소에 문학이나 어떤 레퍼런스를 통해 아이디어를 수집하면서도 바로 무엇을 무엇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시간을 두면서 레이어를 많이 쌓아둬요. 드로잉을 하거나 글을 써놓는다거나, 그것들을 벽에 붙여놓고 한 일주일 동안 보거든요. 소화를 시키는 시간을 좀 넉넉하게 가져요. 왜냐하면 이게 오늘 좋았던 게 내일은 별로고, 내일 좋았던 게 그다음 날은 별로고. 이거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뒤에는 괜찮은 것들이 나와서, 그것들을 좀 더 포괄적으로 섞기도 하면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요. 예전에는 하나에 꽂힌 걸로 표현을 했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이것을 꼭꼭 씹어서 소화를 시키고 다시 배출해는 과정을 길게 가지면서 작업을 하게 되는 방식으로 가게 됐어요.
오윤영)
이때 무릎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박현성)
지금도 무릎이 아플 때는 솔직히 말하자면 후회도 하거든요. 근데 분명히 했어야만 직성이 풀렸고 이걸 해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때만 할 수 있는 작업이 있거든요. 그 당시에는 무릎이 아플 거라던가 하는 다음 단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겁이 없는 거죠 20대 때는. 30대에 들어서고 나니 겁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그냥 무릎이 아프다는 것에 대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그냥 나는 이걸 해야 되고, 그런 자기만의 열정에 취해 있었을 때의 작업이고, 30대가 되어서는 내가 조금 더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기 시작했어요.
오윤영)
예전의 작업을 다시 봤을 때 또 새롭게 보이는 뭔가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박현성)
네. 저는 작업이 정말 막히거나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예전 작업들을 쭉 한번 보는데, 조금씩 다르면서 계속 같은 부분을 건드리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너는 나의 거울(2018)>이라는 짧은 비디오 영상을 잠깐 보여드릴게요.
제가 불안하면 얼굴을 긁는 습관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행동을 얼굴에 하는 게 너무 웃긴 거죠. 그 다음 날 아침에 나가기 전에 긁은 자국이나 흉터를 화장으로 가리는데 이 행위가 너무 모순적인 거예요. 가장 노출이 많이 되는, 숨길 수 없는 얼굴에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나가기 전에는 보여주기 싫어서 가리는 게 어느 순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컨실러로 상처를 가리는 행동을 컨실러가 아닌 빨간 립스틱으로 가리는 작업이에요. 카메라가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화장하는 영상을 찍었어요. 당시에는 흉터를 가리고 싶어서 작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이 작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드러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 수도 있겠다는 거에요. 이게 무의식적으로, 숨기기 쉬운 데를 긁는 게 아니라 가장 노출되는 얼굴을 긁는다는 건 내가 비록 컨실러로 가려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새 들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작업을 보면서 그때는 읽히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들을 가져와 지금 작업으로 넣기도 하고. 지금은 조금 더 투명한 소재들을 쓰기도 하고요.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덮어버리는 레이어가 없어질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생각은 계속 바뀌고. 제가 지금 이 작업을 설명하는 것도 한 5년 뒤에는 봤을 땐 달라졌을 수도 있거든요. 작업을 하는 중에는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아요. 이게 설명하기 너무 어렵고, 그때의 감각으로 하는데 시간이 지나서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오윤영)
이전에 말씀하신 것인데, 염색한 천에 매력을 느낀 것 중 하나가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요. 재봉을 통한 평면에서 입체로의 확장과 연결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박현성)
염색하는 것은 색이 결국 그 천을 관통하는 거거든요. 관통해서 앞과 뒤가 동시에 스며드는 건데, 재봉도 어떻게 보면 바늘이 관통하는 거예요. 천을 뚫고, 여기에 제가 또 뭔가를 뚫고, 아일렛으로 뭔가를 뚫고. 재료와 방법은 변하지만 관통한다는 행위가 계속 지속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재료에 한정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를 하는 편이어서 전과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공백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생겨있겠지 생각하면서 작업을 해요. 작업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새 연결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도 염색을 했던 작업에서 지금 작업이 사람들에게 너무 갑작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작위적으로 그 다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일단 계속 하다 보면 작업이 쌓이니까 언젠가는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초기에 의자 작업을 할 때 의자에 완전히 꽂혀 있었어요. 의자가 어쨌든 사람의 몸을 닮아있잖아요. 등도 있고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당시에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의자에 투영하면 조금 중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속 의자를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이게 몇 년 쌓이다 보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인체나 그런 생각보다 의자가 먼저 들어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의자 뒤에 잘 숨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디어보다 의자를 먼저 생각하게 되다 보니까 언젠가부터는 의자를 빼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염색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의 전시하고 있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도 염색과 억지로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야하나 이런 스스로의 강박이 있었어요. 그래서 잉크에 한번 담궈볼까, 이런 생각을 초기에는 했었거든요. 그런 억지스러운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올해부터는 일단 설치 작업에서는 염색을 다 빼자는 생각을 하고 작업을 하고있어요. 일단 무엇이라도 만들어놔야 나중에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뭔가 시작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변화를 거쳐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오윤영)
이곳의 설치물들은 링거 폴대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여기서 뻗어나오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새로운 생명이 생성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런 부분에서는 터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처음 구상했던 전시명은 《꿈틀꿈틀》이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박현성)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처음에 설명드린 것처럼 성장과 변화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아름답기만 한 성장은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저의 경우에는 없었어요. 제가 성장을 한 순간들은 바닥을 찍었을 때, 내가 스스로 계속 터져 나갔을 때 그다음 단계로 옮겨갈 수 있었고, 끝을 봐야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름답게만 풀어내기보다는 병원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작업했어요.
가령 링거를 맞을 때도 내 몸에 내가 알지 못한 무엇인가 들어와서 꿈틀대며 몸이 팽창하는 것 같고, 이런 것이 관계 속에서도 똑같더라고요. 내가 누군가를 품으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소화해내야하는데, 보이진 않지만 몸이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담았어요.
오윤영)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새롭게 써보고 싶은 재료가 있으신가요?
박현성)
이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링거 폴대를 설계해서 철공사에 맡겨보기도 하고, 레이저 커팅으로 알루미늄 판을 재단하기도 하고 했어요. 그전의 <마지막 포옹(2022)> 같은 작업은 주로 염색한 천만 이용해서 유연하고 약한것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면, 이제 연약한 것들을 지지해 주는 강하고 차가운 재료들이 더 깊숙히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재료들과의 호흡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앞으로도 제작을 하고 싶어요. 천이 굉장히 예민한 것이, 스스로 설 수 없다는 것이에요. 기대어있거나 걸려있거나 어떤 지지해 주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래서 지지하는 것들과 힘의 분배에 더 초점을 맞춰서 시도해보고 싶어요.
오윤영)
제 질문의 마지막인데요. 여기 오신 방문자분들이나 전시를 관람해 주러 오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박현성)
작가는 자기 작업을 풀 때 겁도 나거든요.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긴장하게되는데, 전시를 보러와주신 분들은 그런 것에 겁을 내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냥 보여주고 나는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이게 위로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냥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20대에는 책을 읽을 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네 하면서 힘이 됐어요. 그래서 그냥 이런 사람도 있네 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윤영)
답변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질문 부탁드립니다.
참석자 1 )
저는 이제 어떻게 보면 같이 전시를 하고 있잖아요. 근데 거기는 이제 회화 작업으로 하고 계시고. 아까 제가 처음 왔을 때, 그런 방식과 (지금 전시의) 이런 방식의 차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이 된다라고 말씀하셔서요. 저 같은 경우는 같은 작가의 행위와 몸짓처럼 보였어요.
그 작업에 관련된 작가님의 개인적인 서사나 이 작업에 관련된 개인적인 서사는 다르겠지만, 결국 제가 보는 공통된 키워드는 굉장히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관계를 내가 어떤 방식으로 계속 맺어나갔는가, 연결과 관계 그 자체에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평면 작업에서 염색되는 방식과 최근에 시도하시는 뭔가를, 좀 더 내가 개입해서 거기에 굉장히 이질적인 평면적인 배치를 통해서 관계성을 실현하고 계신 것처럼, 여기에서도 제가 봤을 때는 굉장히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재료들. 너무너무 연약한 천과 조금만 살짝 더 들면 찢어질 것 같은 망사천에 굉장히 날카로운 금속성 재료들을 같이 사용했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사람의 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형상들로 보여서, 작가님의 개인적인 서사나 이야기 이런 거로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도 그냥 배제하고 하나의 물질성으로서만 봤을 때도 이 작가님이 이런 물성과 이런 물성을 가지고 관계 맺는 게 이런 식으로 연출을 해나가시는 게 충분히 그 회화 작업에서 시도하시는 관계의 방식들, 굉장히 양가적이라고 보여지는 것들을 계속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계 맺는 그런 태도가. 저는 보이는 것 같아서 잠깐 그런 말씀 드렸고요.
개인적으로 저도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것들을 어떻게 보여드릴지에 대한 고민들을 안할 수 없는데, 마지막에 해주신 그 말씀들이 되게 용기가 되는 것 같은데.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그것들이 내 손을 떠나고, 나는 뭔가 그다음으로 관계되는.
박현성)
맞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작업이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하는 순간 겁을 먹게 되면서 힘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이 들어가면 다시 뺐다가 이런 조절을 계속해서 하게되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어디까지 드러낼 것이냐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디까지 보여줄 용기가 있느냐인 것 같은데 어쨌든 다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동일한 고민을 갖고 있는 게 저에게도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참석자 1)
작업하실 때 설치같은 경우는 공간 따라 어떠세요? 평면 작업할 때랑. 이것들은 어떻게 보면 장소에 가서 직접 설치하신 거라서. 그 작업이 들어갈 공간이 설치 작업들의 영향을 많이 받나요?
박현성)
네. 저의 경우에는 평면 작업은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동안 긴장을 유지하게되요. 그리고 갤러리로 운송이 되거나 하면 이제 내 손을 떠나면서 긴장을 놓게되요. 그런데 이런 설치 작업은 긴장을 놓는 단계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설치작업은 공간에 설치하는 날 가장 예민해지면서 동시에 가장 큰 희열을 느껴요. 설치 전날까지 수많은 걱정을 하는데요, 얘가 이렇게 걸려서 이렇게 나올까,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모든 변수들이 춤을 추며 부담감이 최고조로 달하게 되요. 그리고 설치하는 날 그 많은 걱정들이 사라지면서 어떻게든 해결이되는데 그때 가장 재미를 느껴요. 어떻게든 꼭 나오거든요.
그리고 절대 내가 생각하거나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되지않는 부분이 좋아요.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될 때, 조금 예측을 빗나가면서 설치가 끝날 때가 확실히 긴장을 놓는 단계인 것 같아요. 평면작업과는 확실히 그 시기에 차이가 있어요.
참여자 2)
<F.A.L> 이건 회화 작업인가요?
박현성)
이건 그린 것은 아니고 염색한 천 위에 오일 스틱이나 오일 파스텔로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부분적으로 덮어낸 작업이에요. 사실 염색이 되게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해요. 저는 몸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염색을 하려면 큰 대야에 물을 떠놓고 천을 짜고, 워싱을 하고, 건조시키기 위해 건조대를 만들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몸을 쓰게되요. 그리고 나서 왁구에 짠 다음에, 꾸덕한 재료로 덮어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작업들은 회화라고 하기보다는 평면 작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참석자 2)
궁금한 게, 설치가 전반적으로 좋은데, 세워져 있는 수직적인 성격이 강하게 보여져서요. 혹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시는 건지 아니면 의도하시는 건지. 제가 보았을 때는 그렇게 느껴지는데 궁금했어요.
박현성)
힘없고 가녀린 것들을 일으켜 세우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치되기 전에는 이 작업들이 모두 한 박스 안에 다 담겨요. 가죽처럼 힘 없이 축 쳐져있고 부피도 차지하지 않아요. 이렇게 직립할 수 없는 천 작업을 도움이 되는 어떤 금속재료를 이용해서 세우면서 작업이 완성되요. 의식하고 하진 않았어요. 다른 작업들에서도 매달리는 거나 힘이나 균형에 대해서 생각들이 많이 드러나요. 그래서 저 작업 <Breathing bones No.01 (2024)> 같은 경우도 양팔의 무게가 다른데 최대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어요. 조금만 당기면 목 부분이 너무 쳐지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어깨가 내려오게 되고요. 그래서 균형을 맞춰서 세운다기보다는 뭔가를 세워서 균형을 맞추는 것에 좀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생각해요.
참석자 3)
독일에서 작업하셨을 때의 작업 방식이 있고, 돌아오셔서 하는 작업 방식이 있으신데, 이 다음 전시는 아마 어떻게 진행이 될 것 같으신가요? 계획이라기보다는 약간 예측.
박현성)
다음 전시를 위해서 드로잉을 하면서 구상 중인데, 이번 전시가 터질 듯 들어차고, 뭔가를 시작하는 몸짓을 다뤘다면 다음 전시는 이번 전시를 발판 삼아 좀 더 유기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해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한국에 와서 작업하는 것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롭다고 생각을 했어요. 독일에서 학교 다닐 때는 모든 작업장이 다 갖춰져 있어서 뭔가를 구상했을 때 나오는 속도가 더디지 않았거든요. 기술적인 것을 도와주는 분들이 늘 계셔서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졸업 후 작가로 놓였을 때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이 작업을 진행할 때 걸림돌이 되었어요. 이 재료 어떻게 구하지? 어떻게 하면 내가 조달할 수 있는 재료로 작업을 하지? 내가 조달하기 쉬운 재료를 위주로 한정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졸업을 하고 3년 정도 작가 생활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계산적이고 소극적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볼링핀 작업의 경우 작은 것을 여러 개를 둠으로써 스케일을 키웠고 작업하고나서 이걸 작업실에 둘 자리가 있을까, 만약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들고 가지, 이런 생각 먼저 드는 거예요. 짐이 늘어나는 것에 굉장히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물론 똑같은 제약이 있고 걱정을 하는건 여전하지만 우선 언어적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서인지 생존을 위한 단계가 좀 더 단순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스스로도 좀 더 능동적여지는 것 같다고 느껴요. 그래서 필요한것을 찾아다니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더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해보고 동대문 시장도 가면서 좀 더 재료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참여자 3)
<마지막 포옹> 이건 언제쯤 하셨던 작업인가요?
박현성)
독일에서 2022년 12월에 귀국했는데, 2022년 여름에 작업해서 9월에 전시한 작업이에요. 귀국을 결정하고 진행한 작업이어서 제목이 마지막 포옹이에요. 귀국을 결정하고 나서부터 귀국날까지의 시간이 너무 무거웠어요. 20대를 거기서 다 보내고,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어디 갈 때마다 이제 내가 여기를 못오겠지, 그런 감정이 너무 무거운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무거워보이지만 가벼운 재료를 썼어요. 안을 스펀지로 채워서 사실은 아주 가벼워요. 떠나는 곳에 남아있는 것들은 무엇이고 이별이라는 이상한 상황에서 학습하게되는 슬픔과 그 무게에 대해서 생각을 했던 작업이에요. 이별이라는 상황이 사람을 극단적으로 만들더라구요. 오히려 관계 속에서도 오랜시간 가까워진 거리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가까워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느낀것들을 담은 작업이에요. 그래서 귀국 가장 직전에 했던 작업입니다.
오윤영)
독일에서 한국 오셨을 때 재료들 이름을 잘 몰라서 헷갈리셨다고 했잖아요. 작가님께서 한국에 와 다시 그 재료들을 찾는 과정이 걸음마 같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박현성)
네. 독일에서는 캔버스 크기도 호수로 나누지않고 cm단위로 나눴어요. 왁구가 네개의 나무가 조립되어있잖아요. 독일에서는 화방에 가면 왁구가 낱개로 cm별로 팔고있어요. 그럼 거기서 예를들어 오늘은 58cm 6개 가져오고, 가져온 것들로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만들어서 쓰곤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재료를 어디서 사야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 거예요. 독일은 크게 딱 정해져 있거든요. 한국처럼 택배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가 않아서 거의 다 직접 가서 사는 편이었는데 화방이 마트처럼 크게 도시마다 있었어요. 철물점도 바우막트라고 하는데 마트처럼 크게 동네마다 있었어요. 거기가면 모든게 다 있거든요. 독일의 철물점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한국에 돌아와서 철물 용품들이 한국어로 뭔지도 잘 몰랐어요. 염색할 때 쓰던 잉크같은 경우도, 독일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 나에게 익숙한 잉크를 찾았는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다시 처음부터 실험하면서 작업해야하는것이 막막했어요. 천도 마찬가지였고요. 독일은 천을 살 때 무게로 나누는데 한국은 실의 굵기로 구분하더라구요. 그래서 독일에서 쓰던 천이 여기서는 어느정도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은 참 어떻게든 적응을 하고 방법을 찾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재료를 찾기도 하고요. 내가 여기에 발 붙이기로 했으면 여기서 어떻게든 하는거죠. 사실 독일에서도 버텼는데 여기서 안될까 라는 생각으로 좀 환기를 시키고 시작을 했어요. 오히려 그 과정에서 겁도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재료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어요.